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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태비 길 고양이, 나는 야행성 동물.

오늘 일은 우리끼리 비밀로 해주게 

 



괭인은 골목길을 좋아합니다. 도로변 보다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한적하고. 또 길 고양이 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요즘은 재개발 되는 곳이 많아서 괭인의 어릴 적 추억의 장소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골목 구석구석 어릴 적 기억이 남아 있는데, 그런 추억의 장소들이 하나 둘 없어져 가는 것이 왠지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바람도 쐴 겸 시간이 날 때 마다 골목길을 다니며, 길 고양이들을 보러 다니는데요. 하루는 그렇게 골목길을 다니다가 날씨가 너무 더워서 길 구석 그늘을 찾아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노랑 치즈태비 한 녀석이 저를 발견 못했는지, 골목길을 뒹굴면서 벌레를 잡고 있더라구요. 그 장면이 꼭 집 고양이가 집사 앞에서 장난치는 모습 같아서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찍었어야 했는데, 찍지 못한 것이 이제 와서 너무 아쉽네요.ㅠㅠ) 한참을 그렇게 사냥에 집중하던 녀석이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저를 발견했습니다.

치즈태비도 놀라고 저도 놀라고 벌레도 놀랐습니다. 노란 치즈태비 길 고양이 녀석이 잠시 상황 파악이 안된 듯 멈춰서 어찌할지 몰라 하더니, 종종걸음으로 저한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장면을 보고 어찌나 웃었는지. 다른 동물은 잘 모르겠지만, 고양이는 자신의 개인 사생활이 확실한 동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서 열중하는 장면을 다른 녀석에게 들키면 엄청 곤란해 하면서 딴청을 하잖아요? 치즈태비 녀석이 얼마나 놀랐을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어쨌든, 이 야행성 동물이 이 밝은 대낮에 경계대상 1호인 사람 앞에서 뒹굴거렸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있는 사이, 저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 나는 여기서 나가야겠어. "

 

사진기 소리에 얼른 도망가는 치즈태비 녀석.

이제야 정신을 차린 모양이네요. 얼른 자리를 피합니다.

 

" 설마 내가 잘못 봤나? "


어라? 그런데 이 녀석. 도망가다 말고 자꾸 뒤를 돌아보네요. ㅎㅎ

자기가 혹시 잘못 본건 아닌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제 존재를 확인합니다. ㅋㅋㅋ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네요. 길 고양이의 야생 동물로서의 본능도 완벽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저렇게 당황하는 티가 나니 우습기도 하고 왠지 정도 가고 하더라구요.

 

" 이봐 자네. 오늘 본 일은 우리끼리 비밀로 해주게.

뭐 꼭 창피해서 그러는 건 아니고…

사실 지금은 평소에 내가 자는 시간인데, 아직 식사를 못해서 이러고 있다네.

졸리고 배고프다 보니 이렇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구만. 자네가 이해 좀 해주게.

나는 야행성 동물이지 않나. 고양이가 잠을 못 자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나를 자꾸 부끄럽게 하는구먼.

어허! 이 사람이 그래도! 쳐다보지 말라니까 그러네.

흠흠… "

 

" 아니, 자네 뭔가. 아직도 안 갔나?

이보게 내가 요즘 밤낮이 바뀌어서 힘들어. 응? 사람이 말이야. 눈치가 있어야지.

응? 뭐라고? 식사라도 한끼 대접하고 싶다고?

그만 두게나. 우리가 언제 본 사이라고 내가 밥을 얻어 먹겠나.

이래봬도 내가 길 고양이 생활만 3년째네 그려…

나는 아무에게나 신세지고 다니는 그런 고양이가 아니네.

뭐 그래도 정 밥 한끼 대접 하고 싶다면, 나중에 밤에나 오시게.

나는 야행동 동물이니 밤에 보는 것이 더 편하지 않겠나?

지금은 너무 밝고 보는 눈도 많아서 말이야. 흠흠…

아니 이사람! 내가 부끄러워 그러는 것이 아니래도 그러네!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가? 조심 또 조심해야 살아갈 수 있는 법이야.

자네가 아무리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도,

내가 그걸 어찌 확인할 길이 있겠는가 말이야.

뭐 자네가 싫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니 너무 섭섭해 말게나.

이것이 길 고양이의 삶인 것을…. "

 

" 나는 이만 가 보겠네. 길 고양이 된 몸으로 너무 오래 떠들었구먼.

오늘 밥 먹기는 틀린 것 같으니 어디 가서 잠이나 좀 자야겠어.

그러니까 따라오지 말게나.

역시 사람은 밤에 자야하고 길 고양이는 낮에 자야 하는 법이지.

요즘은 사람들이 밤에도 불이란 불은 다 켜놓고 산단 말이야.

눈이 부셔서 살 수가 없으니 밤에는 좀 어둡게 하고 살게나.

나는 야행성 동물이니 그것이 몸에 이롭지 않겠나?

자 우리 만남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지.

잘 가게나. 그리고 약속 꼭 지키고. 에헴. "

 

…이라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노란 치즈태비 길 고양이는 골목 어귀로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주는 간식은 먹을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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